[맞짱 토론] 전자건강보험증 도입 필요한가

입력 2015-07-31 18:28  

[ 이지현 기자 ]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전자건강보험증 도입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종이 건강보험증을 IC카드 형식의 전자건강보험증으로 바꾸면 보험증에 환자의 병원 방문 이력, 진료 기록 등을 담을 수 있다. 이 경우 의료기관은 주민등록번호가 아니라 전자건강보험증으로 환자 본인 여부를 확인하게 된다.

건보공단은 전자건강보험증을 도입하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과 같은 감염병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건당국과 의료기관이 전자건강보험증을 통해 환자 동선과 진료내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르스 등 감염질환에 선제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증 도용으로 연간 수천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새나가는 것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환자가 복용하는 약, 알레르기 정보 등을 보험증에 담으면 응급환자 진료 등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반면 일부 시민단체와 의사단체 등은 전자건강보험증 도입에 반대한다.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높아진다는 이유에서다. 전자건강보험증을 도입하면 하나의 카드에 개인의 진료 이력이 모두 담긴다. 카드를 분실하면 개인정보뿐만 아니라 민감한 질병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건강보험증을 발급하는 데 적지 않은 비용?드는 것도 문제다. 모든 국민이 가지고 있는 주민등록증으로도 충분히 환자 본인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재정 낭비라는 견해다.

찬성 / 환자 동선·진료내용 실시간 파악…감염질환 확산 선제적으로 대응

본인 여부 식별로 부정수급 차단…의료비 부담 줄 것

올해 6~7월은 메르스로 시작해 메르스로 끝났다. 지난 28일 정부는 메르스가 사실상 종식됐다고 선언했지만 메르스 때문에 나라 전체가 큰 혼란을 겪었다. 국가 간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해외 유행 감염병이 국내로 유입되는 사례는 계속 늘고 있다. 메르스뿐 아니라 변이를 쉽게 일으키는 바이러스성 감염병이 언제든 창궐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대규모 감염병의 유행을 막기 위해 한국은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놓았다. 법률을 살펴보면 왜 메르스 사태가 발생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잘 만들어진 법률이 무용지물이 된 이유는 메르스 유행 초기에 감염 환자를 제대로 추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발빠르게 정비해야 한다.

메르스 사태 초기 의료기관들은 감염 의심 환자의 동선을 파악할 수 없었다. 현재 환자관리 체계에서는 감염병에 걸린 환자가 여러 의료기관을 돌아다녀도 환자 본인이 이야기하지 않으면 의료기관에서 감염 사실을 알기 어렵다. 감염 환자의 진술에만 의존하는 지금의 시스템으론 제2, 제3의 메르스 사태를 막기 어렵다.

전자건강보험증 제도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IC칩에 진료정보를 내장한 전자건강보험증을 도입하면 보건당국과 의료기관이 실시간으로 환자의 동선과 진료 내용을 파악할 수 있어 감염병 유행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환자의 의료 이용 이력을 비롯해 감염질환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적하는 역학조사와 실태조사도 쉬워진다. 감염병 예방과 관리의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

전자건강보험증은 의식이 없는 응급환자나 노인, 어린이 등 자신의 병력을 스스로 진술하기 어려운 환자의 진료에도 활용할 수 있다. 앓고 있는 질환, 가족력, 그동안 이용한 의료기관, 진료 내용 등을 신속하게 확인해 진단과 치료를 빠르게 할 수 있다. 일본의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1980년대부터 65세 이상 노인에게 진료 정보를 담은 IC카드를 지급해 응급상황에서 생명을 구하고 있다.

전자건강보험증을 활용해 알레르기가 있는 환자에게 부작용 우려가 있는 약을 처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불필요한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도 줄일 수 있다.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건강보험증을 도용해 진료받는 것도 차단할 수 있다.


현재는 주민등록번호만 대면 의료기관에서 진료받는 데 아무런 제한이 없어 한 해 수천억원으로 추정되는 건강보험 재정 누수가 발생하고 있다. 전자건강보험증으로 환자 본인 여부를 식별하면 부정수급과 재정 누수를 막아 건강보험료 인상률을 낮출 수 있다.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전자건강보험증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제도든 장단점이 있다. 전자건강보험증의 단점을 지나치게 부각해 반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벨기에 이탈리아 독일 대만 등 여러 나라에서 이미 전자건강보험증을 도입했다. 이들 나라는 환자·의사·의료기관 카드를 동시에 접속하는 등의 보안시스템을 구축해 개인정보 유출 위험을 최소화했다. 아직까지 정보유출 사태가 발생한 나라는 없다.

전자건강보험증 도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제도를 도입할 실익과 명분이 충분하기 때문에 단점이 있다면 이를 시행하는 나라의 운영 경험을 타산지석 삼아 보완하면 된다.

반대 / 카드 하나에 모든 의료기록 담겨…관리 소홀땐 개인정보 유출 위험

건강보험증 재발급 비용 만만찮아…재정 낭비 우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최근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전자건강보험증을 도입하면 의사가 환자의 진료 이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전자건강보험증 도입을 위한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건보공단은 현행 건강보험증의 재발급에 따른 비용과 행정 낭비, 혹은 체납자와 무자격자의 부정수급을 막기 위해서란 명분을 내세워 전자건강보험증 도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최근엔 6000만원의 연구비를 들여 건강보험과는 무관한 정보기술(IT)업체에 연구용역을 발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전자건강보험증이 앞서 건보공단이 제기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열쇠’가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선 의료 전문가단체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가입자를 대변하는 시민단체들마저 걱정 어린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자건강보험증 도입에는 어떤 문제점이 내포돼 있을까.

첫 번째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다. 얼마 전 약학정보원 등을 통해 환자 약 4400만명의 의료정보 47억여건이 당사자 동의 없이 불법으로 유출, 거래된 사실이 드러났다.

건강 정보 유출은 다른 개인정보에 비해 정보 주체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게다가 민간보험과 근로 관계, 기업 마케팅 수단 등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정보여서 더욱 높은 수준의 보안이 요구된다.

건보공단은 매년 국정감사에서 허술한 가입자 개인정보 관리에 대해 지적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자건강보험증을 통해 전 국민의 건강정보를 집중화하고자 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냉철하게 숙고해야 한다.

두 번째는 국민의 편의성 부분이다. 한국은 단일보험자 체계로 전 국민 건강보험과 더불어 일부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급여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국민의 의료기관 접근성에 제약이 없는 상황으로, 일선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의 신분증 혹은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수진자 자격을 확인하고 있다.

이같이 건강보험증의 역할이 미미한 가운데 전자건강보험증을 도입했다는 이유로 이를 소지하지 않거나 신분 확인이 어려운 환자에게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혜택을 거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제3자지불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법에 명시된 보험자의 핵심 업무인 ‘보험료 징수와 수진자 자격 관리’ 관련 책임을 가입자와 공급자에게 전가하고자 하?것은 건보공단의 지극히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본다.


세 번째는 비용 부담이다. 건보공단은 전자건강보험증 도입을 통해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건강보험 부정사용에 따른 환수결정금액은 총 48억원으로, 전체 급여비 지출 규모의 0.0026%에 불과하다. 모기 한 마리를 잡고자 대포를 쏘아대는 것처럼 비용 대비 효용성이 불확실한데도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전자건강보험증을 도입하고자 하는 것은 한마디로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격자 관리’라는 극히 편협한 편의성을 내세워 환자 개인정보라는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것을 잃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건보공단은 보험자로서 법에 명시돼 있는 보다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보험료 징수 및 관리 방안을 고민하는 데 집중해야 할 때라고 본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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